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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합진, 望江閣을 가다
기사 입력 2014-10-12 22:08:49  

▲ 망강각에서 바라본 두만강과 멀리 회령벌

국경연휴를 이용해 고향인 연변을 방문하였다. 연변행차는 언제라도 눈물겹도록 정겹고 즐거운 일이다. 수많은 추억과 이야기들이 묻어있는 고향의 산과 물을 보면 늘 흥이 도도하다.

이번 연휴에는 지인의 안내로 용정시 삼합진을 가게 되였다. 그곳에 “망강각”이 새로 섰고 그곳으로는 조선땅을 한결 더 가까이에서 선명하게 볼 수있다고 한다.

사실 조선땅을 본다는데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한국사람들은 늘 “북한”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또 저들의 각가지 상상까지 보태면서 조선을 신비의 땅으로 각인하고 있다. 그리고 기회만 되면 그곳을 엿보려는 엽기적인 심리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마냥 연변에서 자라서 두만강을 따라 삼합이나 훈춘, 도문을 통해 조선을 많이 바라보았기 때문에 별로 신비롭지 않았다. 하지만 조선을 바라본다는 빌미로 아름다운 산천을 둘러보고 농촌의 가을정취를 한껏 느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되였다.

용정을 떠난 SUV는 육도하를 거슬러 신나게 삼합진으로 향해 달렸다. 그 유명한 명동
학교와 윤동주 시인의 생가가 있었다던 명동촌을 지나 지신방향으로 달렸다. 선바위를 지나 “3.13”렬사묘비와 독립운동사에 유명했던 “15만원 탈취 사적비”도 있었다. 우리민족이 룡정에 터를 잡기 시작해서부터 일제와 굴함없이 싸웠다는 역사의 흔적들이다.

오랑캐령을 지나니 길은 한결 더 좁아졌고 길 량켠의 나무숲이 더 우거졌다. 산에는 알록달록 단풍이 들기 시작하였고 푸른 하늘에 떠도는 흰 구름은 보기만 하여도 시원하기만하였다. 늘 도시에만 박혀있던 우리의 머리를 식히고 혼탁한 마음을 시원히 적셔주기에는 더 좋은 선택이 없었을 것이다.

삼합진은 눈에 띄이지 않을정도의 작은 진이다. 아름답게 가꾸어진 새 농가들이 줄지어서고 길 량켠에 단층집들이 비교적 집중되어 늘어선 곳이 진 소재지라고한다. 우리를 안내한 지인은 삼합진의 무장경찰부대 집무실을 지날 때 커다란 군용 망원경 하나를 들고 나왔다. 망강정에 가면 이것으로 조선을 더 잘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두만강을 따라 좀 더 가다가 다시 산언덕으로 뻗은 길을 따라 산언덕 하나를 올라서니 비교적 넓은 산언덕 공지에 관광지가 개발되어있었고 3층 루각 하나가 떡 버티고 서있었다. 우리의 목적지 망강각이라고한다.

“관광지 입장료는 받는냐 안받느냐? 입장료는 얼마냐? 관광객이 많으냐?” 등등 일상적인 궁금증도 없지 않아 있었지만 수십명이나 몰려있는 전망대의 관광객들이 더 궁금했다. 뭘 그처럼 열심히 구경하고 있을까?

전망대에서 바라보니 조선의 회령군이 그대로 눈앞에 펼쳐졌다. 두만강 물줄기가 산밑으로 흐르고 그 건너편은 드넓은 평지와 도시가 펼쳐져 있었다. 바로 조선의 회령이라고 한다. 화려한 고층빌딩은 없었지만 5,6층 정도의 낮은 층집들이 비교적 촘촘히 들어섰고 도시 가운데 산언덕은 공원으로 만들어져있었다. 그리고 두만강으로부터 조선측 세관을 지나 회령시로 통하는 도로가 길게 뻗어있었으며 두만강의 지류인듯한 하천에는 철교와 다리가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회령시는 아득히 멀리 보이는 산줄기까지 펼쳐져 있었다. 도시규모나 모습은 60~70년대 연길시와 비슷했지만 탁 트인 그 터는 연길시의 몇배 정도로 훨씬 컸다.

나는 급급히 100-400밀리 초장거리 렌즈를 바꾸어들고 회령시를 카메라에 잡아보려 했다. 두만강이나 다리, 도시들은 눈앞으로 많이 다가섰지만 난사광선으로하여 너무 선명하게는 안겨오지 않았다.






▲ 두만강기슭의 벌에서 농사짓는듯


▲ 회령벌에서 농사짓는 조선 농민들


▲ 외편 남색기와의 건물이 조선쪽 세관이라고 한다


너무나도 가깝지만 또 쉽게 갈수 없는 “먼 곳”이었다.

간단히 기념촬영을 마치고 우리는 망강각을 떠나 삼합진의 조선마을로 향했다. 두만강을 따라 굽이굽이 뻗은 길은 화룡을 거쳐 두만강의 발원지인 장백산까지 통한다고 한다. 그리고 반대쪽으로는 그냥 두만강을 따라 개산툰, 도문을 지나 훈춘에 도달할수있다고한다. 그곳에서 두만강은 중국과 조선, 로씨야 3국 국경을 지나 바다로 흘러든다.

드높은 산언덕너머로 푸른 하늘이 아름답게 펼쳐졌고 키 높은 옥수수들이 끝없이 펼쳐져 가을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바른편은 두만강 량쪽으로 황금의 벼파도가 설레이는 논밭이 펼쳐졌다. 두만강기슭, 산기슭으로 난 길을 따라 한참 달리니 지붕에 붉은 칠을 한 농가들이 나타났다. 아담진 정원과 황금의 벼파도에 포위된 붉은 지붕의 농가들은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농가마을 뒷동산에는 과일나무들이 많았다. 수확의 계절이라 과일나무에는 과일이 탐스럽게 달려있었다. 사람들은 과일을 따다 상자로 잘 포장해놓고 언젠가는 팔려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인의 말에 의하면 올해 가물이 심해 농민들이 소득을 가장 많이 올리는 송이버섯은 거의 밀대를 놓았다고한다. 게다가 요즘 중앙의 규정이 심해 과일들도 가득 쌓였지만 판로를 찾지 못한다고했다. 이전 같으면 기관단위들이 모두 예약이 되여 과일을 포장하기 바쁘게 다 실어가버리군 했지만 지금은 도저히 안되는 형편이다. 단속이 너무 심해 어느 단위든지 감히 공금을 내고 사과배를 싸서 종업원이나 직원들에게 나누어줄 엄두를 못낸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미 공금이나 공짜로 사과배를 먹는데 습관 된 사람들이 돈을 내고 과일을 사기를 기다린다는 것은 더욱 기대할 수 없는 일이였다. 농민들은 그냥 가득 쌓인 과일들이 썩어가는 것을 보면서 속을 태워야할뿐이다. 그렇다고 수송비용까지 부담하면서 멀리 도시로 실어다 팔수도 없는 일이였다. 이래저래 손해 보는 건 농민들일뿐이구나 하는 탄식이 나온다.


▲ 룡정시 삼합진의 농가 도로


▲ 삼합진 농가마을입구


▲ 어느 농가의 뜨락또르

두만강을 따라 계속 가다보면 강가에 별장처럼 반듯하게 잘 지은 농가들이 나타난다. 고풍의 돌담으로 잘 둘러져있는 오붓한 벽돌기와집들이였다. 마당에는 채소를 심을 터전이 있었고 또 과일나무도 싱싱하게 자라고있었다. 소개에 의하면 이 집들은 모두 정부에서 돈을 내 건설한 새농촌 새농가들이라고 한다. 변강지역이기 때문에 국가의 혜택도 잘 받는다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농가들도 대부분 빈집뿐이고 주민들은 그림자조차 찾아보기 힘들다. 농망기여서 모두 밭에 나갔는지 아니면 돈벌러 도시로 나갔는지 모를 일이다.

돌아오던 언덕길에서 두만강 건너편 회령군에 속하는 조선의 농촌 마을을 굽어보았다. 촘촘한 벽돌기와집과 숲처럼 밀집된 굴뚝들이 퍽 인상적이였다. 적어도 썰렁하고 빈 느낌이 없이 오붓하게 사람들이 모여사는 고장이고 깨끗한 고장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한창 농망기인지라 차들이 없는 길에는 탈곡한 옥수수들을 말리고있었다. 이따금 그 사이로 행인이 걸어다니도 하였다. 텅빈 우리쪽 농촌마을과는 선명한 대조가 아닐수 없었다. 적어도 인간들이 오고다니는 모습이 정겹도록 반가웠다.
  
두만강가에는 이따금씩 낮은 변방초소도 보였다. 유심히 찾지 않으면 잘 발견하기 어렵다. 꼭 일제시대의 “또치까”와 같았다. 사사로이 두만강을 건너 월경하는 사람들을 단속하기 위한 조치인 듯싶었다.


▲ 조선의 농가마을


▲ 거리에 낟알을 말리고 행인도 다니고


▲ 아담진 집들이 촘촘한 농가마을


▲ 두만강가 나무숲사이에 보이는 초소(강가 가로수 사이 오른쪽 3분의 1쯤)

두만강 기슭을 따라 눈앞의 가까우면서도 너무나도 멀고 낯선 땅을 바라보면서 생각은 착잡하기만 하였다.

두만강, 두만강의 물줄기가 월경민족인 우리를 먹여 살린 생명의 강이요, 어머니 강이라고하지만 나의 인상에는 그것보다도 두만강은 그야말로 눈물에 흠뻑 젖은 강이요, 아픔의 강이요, 우리민족의 통한의 강이라고 생각되였다!

월강죄는 사형이라했지만 죽음을 무릅쓰고 강을 건너 도적 농사를 짓다가 봉금령의 해제로 자유롭게 강을 건너 이 땅에 터전을 잡기 시작해서부터 “눈물 젖은 두만강”은 노래로 만들어져 널리 오래동안 불리워졌다. 고향을 등지고 멀리 이국타향에 와서 새로운 터전을 마련할수밖에 없었던 실향민들의 정감을 잘 반영한 노래였던것이다. 그후 두만강을 넘나들면서 수많은 중조 량국 혁명가들이 어깨겪고 싸웠다. 중국에 공화국이 창건된후에도 엄연히 국적은 달랐지만 두만강은 우리민족의 혈연적 련계를 끊지 못했다.
  
대약진시기의 굶주림을 피해 많은 조선족 주민들이 조선으로 월강해갔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리고 중국의 “문화대혁명”시기 “우파”로 몰리거나 “조선특무”로 억울한 루명을 쓴 많은 간부들이 마음의 한을 풀지 못한 채 몰래 두만강을 건너 “자기네 나라” 조선으로 갔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어느 동료에게서 들은 이야기지만 조선 김일성종합대학에 연수갔을때 글쎄 그곳에서 자기 아버지와 함께 연변대학에서 우파로 몰렸던 로교수분을 만났다는 것이다. 아버지와 각별한 사이였던 그 교수는 정치투쟁에 배겨내지 못하고 조선으로 갔다가 지금까지 김일성 종합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계신다는 것이다.

이 처럼 빈곤과 가난에 굶주렸을 때 그리고 정치투쟁이 심각했을때 많은 우리민족이 이 강을 건너 다시 조선으로 나갔던 눈물의 이야기가 적지 않다.

중국에 개혁개방이 되여 좀 잘 살게 된 후 이번에는 세상이 뒤바뀌여 조선의 더 많은 굶주린 백성들이 두만강을 건너 중국으로 건너왔다. 한국인들은 이들을 “탈북자”로 부른다. “북한”의 정치체제를 버리고 “자유세상”을 찾아 나온 사람들이라고해서 부르는 명칭이다. 이들의 피눈물의 이야기는 두만강물을 다 퍼부어도 씻을수 없을 만큼이나 많고도 많다.

오랫동안 봉페되여있기 때문에 조선의 정체에 대해 외부에서는 잘 모르고 있다. 설사 강 하나를 사이두고 이웃 마을을 내다보듯 가까운 삼합진에서도 마찬가지로 그 정체를 보아낼수 없다. 보일듯말듯한 베일에 가리워져 그 진실을 알수 없는 것이다. 때문에 나쁘게 생각하면 이 세상 더 없이 악착한 곳으로 부각되고 반대로 또 좋게 생각하면 더 없이 훌륭한 “사회주의 낙원”인듯도 하다. 아마도 이렇기 때문에 그 신비감을 더 해주고 있는 듯 싶다.

연변행을 마치면서 귀경할때 놀라운 소식이 터져나왔다. 조선에 “정변”이 일어났다는 놀라는 기사였다. 중국 인터넷에서 터져나온 기사인데 글쎄 조선에 “정변”이 일어나 최고지도자 김정은이 구금되고 조선의 실세 인물들이 인천 아시아체육경기대회 페막식을 빌미로 한국을 돌연 방문했다는 것이다. 이들의 한국 방문의 목적은 단순히 페막식에 참가해 우수한 성적을 따낸 조선선수단을 격려하고 남북관계를 개선하기 위한것이 아니라 조선의 정치체제 변혁을 한국과 서방세계에 통보한다는 숨은 뜻도 포함된 것이라고 분석되였다. 실로 놀라운 소식이 아닐수없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거짓보도이고 허위기사였음이 곧 밝혀졌다.
  
사람들은 너무 일방적으로 조선의 체제가 무너지고 조선이 더 개방되기를 바라기 때문에 이러한 허위 기사가 튀여나오고 또 많은 사람들이 이를 진실로 믿으려하고있는것이다.
  
사실 세상에서 유일한 분단국인 조선과 한국간의 통일은 국가와 민족의 차원을 훨씬 넘어서 여러 정치세력이 각축을 벌이는 전초지이기 때문에 현황이 쉽게 개변될수 없다고 생각된다. 그만큼 지금의 균형이 쉽게 깨여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 균형이 깨지는 날이면 어찌보면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날지도 모를일이다.
  
정보화시대 경제가 비약적으로 발전하고있는 오늘, 세상의 정치중심은 경제발전에 있고 최상의 정치리익은 경제와 안보로 구성된 세력유지와 확보에 있기 때문이다.
  
가까우면서도 아득히 먼 곳, 건너편 산과 물, 너무나도 친숙한 농가 마을을 눈앞에 바라보면서 가슴이 터질듯 한탄하고 울부짖어도 그 아픔의 현실을 그냥 받아들일수밖에 없는게 바로 두만강이라 하겠다. 그리고 옛날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 눈물젖은 두만강을 사이두고 모든것을 멀리 굽어보는 망강각이 원망스럽다!


▲망강각에서 굽어본 두만강




김성룡
조글로 2014-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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