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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전통된장과 “귀향아리랑”
기사 입력 2008-01-10 13:29:35  

“연변민들레” 리동춘리사장의 연변사랑행진곡- <박문희 기자>  
돌아가노라 돌아가노라 이 아들이 돌아가노라
고향산천 부모처자 그리워서 령을 넘어 돌아가노라
--《귀향아리랑》(리동춘, 허동규 작사, 허동규 작곡)에서



“연변민들레마을” 힘찬 스타트

작년 12월 15일, 대련의 수출대리회사를 통해 이 해의 마감차 “민들레와 순창두레 마을”표 전통된장을 한국행 화물선에 실어보낸 연변민들레생태산업연구유한회사 리동춘 리사장(52)은 어쩌다가 즐거이 쇠게 될 새해 설을 떠올리며 금시 마음이 개운해졌다. 그도 그럴것이 연변을 조선족전통된장의 세계적생산류통중심으로 부상시킬 구상을 안고 3년 전 연변에 진출한 리동춘은 각고의 준비끝에 2006년 9월 초순 연변된장의 첫수출을 시도했다가 실패, 이어 작년 5월과 7월에도 역시 검사의 고비를 넘기지 못해 크게 좌절했으니 그런 상황에서 설명절인들 가슴에 얹힌 그 무거운 고뇌를 털어버릴수가 있었겠는가.

그래도 좋은 날은 찾아오게 마련인가보다. 작년 9월 드디여 수출에 성공했다. 그것은 “전통된장의 현대화생산조건은 유일하게 연변만 가지고있다”는 리동춘의 확고한 신념 덕분이였다. 꿈을 이루기 위해 하루도 거르지 않고 고집스레 애써온 결과였다.

상품이 번번이 퇴짜를 맞았던것은 다른 원인이 아니였다. 전통생산방식에서 필시 나타나는 불미스런 세균 아플라톡신이 기준치를 넘는것이 문제였다. 북경대학생명 과학원의 저명한 전문가, 교수를 모셔왔다. 여러 가지 방안을 동원한 십수차례의 실험 끝에 고안해낸 새로운 발효공법으로 끝끝내 골머리 아픈 문제를 풀어냈다.

그것이 첫실패로부터 딱 1년만인 작년 9월 22일의 첫성공으로 이어졌다. 그때 내보낸 제품은 한국식품약품안전청의 정밀검사를 거쳐 공식 통관, 뒤미처 합작업체로부터 최고급품질로 인정받았다.

지난해 12월까지 세차례에 걸쳐 순조롭게 수출된 19톤의 원조전통된장은 한국시장 류통과정에 좋은 평판을 받았다. 이를 토대로 리동춘은 한국의 전통장류 브랜드기업 “순창진미식품주식회사”와 전통장류생산의 최적청정지인 “연변두레마을”과의 “3자합작”을 이끌어내고 따라서 “민들레와 순창두레마을”이란 통일브랜드로 매월 100톤 수출계약의 체결을 최종 성사시켰다.

꿈을 현실로 바꾸는 첫 걸음을 힘있게 내디딘것이다.

격변의 시대 “민들레고개”

민들레! 아름다운 세상을 지향하여 지구촌 방방곡곡에 민들레홀씨들이 흩날려가 갖은 시련과 수난의 발자취를 남기고 새로운 공동체로 정착하면서 글로벌시대 창조적민족으로 거듭나는 우리 민족!

개혁개방 이후 산업화 봄바람을 타고 조선족들이 돈벌이를 위해 도시로 또는 한국으로 빠져 나가면서부터 조선족 마을들은 해체의 일로를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흑룡강성 해림시 신합촌은 여느 촌과는 달랐다. 다른 촌의 학교들은 하나 둘 문을 닫아걸었지만 신합촌의 학교는 오히려 학생수가 늘었다. 젊은 사람들이 도시로, 한국으로 떠나가는 현실에서 신합촌에는 역으로 젊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었다.

이곳을 변화시킨 주인공이 바로 오늘 “민들레마을”의 리동춘이다. 그는 조선족기업의 신화로 불리는 “백두산그룹”을 창설하여 큰 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그가 백두산기업을 만든건 그 자신의 성공만을 위해서가 아니였다. 그는 기업에서 나는 리익금을 고스란히 조선족을 위해 재투자했다. 이렇게 만들어진것이 신합촌 신도시 즉 “백두산타운”이다. 신합촌은 흑룡강성 조선족촌 중의 제1촌으로 떠올라 흑룡강성 당위서기가 점을 잡고 경험을 탐구하는 모델촌으로 되였다. 유명해진 리동춘은 제 9기 전국인대 대표를 지내기도 했다.

그러나 사업이 한창 잘나가고 있는 이때 북경에 있는 우리 민족의 엘리트들이 유명짜한 해림시 백두산타운으로 수차 드나들면서 강력한 “유세”를 펼친 끝에 매여끌다싶이 리동춘을 북경으로 모셔들인다. 애지중지 가꿔온 기업을 젊은이들에게 맡기고 북경에 들어간 리동춘은 “중국조선족코리안닷컴” 을 세우고 중국 조선족의 우수한 젊은이들을 발견해서 키우는 “미래양성”사업에 동참하고 “중국조선족발전을 위한 심포지움”의 집행위원장도 력임, 몇 년간 동북 3성 조선족 새농촌건설 관련 학술세미나를 수차례 벌려왔다. 그 행정에 조선족사회의 발전은 말로만이 아니라 문화와 경제를 잇는 실제행동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통감하고 결연히 연변진출을 결심한다.

“외딴 섬”으로의 “귀향아리랑”

산 좋고 물 맑고 공기 청신한 연변의 깊은 산중에 “연변민들레전통장류단지”가 조성되고 있다. 길가에 우뚝 솟은 1메터 직경에 6메터 높이의 통나무간판이 름름하다. 꼭대기에 앉아있는 전통장독이 살아있는 간판처럼 손 흔들어 길손을 맞이하는듯 싶다.

인적기 드문 초시작 단계의 작업현장이라 아직은 고즈넉하고 한산하기까지 하다. 전기도 들어가지 않은 야산기슭에 황토벽과 통나무구조로 된 한옥 한 채, 그리고 몇백개의 장독대가 고작 눈에 뜨이는 실물 전체이다.

하지만 바로 이곳에서 현대기업의 경영론리로는 도저히 해득할수 없는 거창한 일들을 리동춘을 비롯한 “민들레마을” 사람들이 만들어가고 있는것이다. 그것도 한국기업 진출 십수년에 300만 딸라를 집어넣고도 여봐라 할만한 항목을 개발해내지 못해 아직 그냥 대기상태인 이 “외딴 섬”에서 그는 대관절 무슨 수로 생태산업이라든가 농가기업육성 이라든가 세계최대 조선민족전통장류단지 조성이라든가 문화와 산업의 융합이라든가 하는 “거창한 꿈”을 이룬다고 하는것일가?
아래 이 몇 년간 리동춘네의 행적을 간단히 살펴보기로 하자.

-2004년, 연변 최초의 “록색경제문화학술세미나” 개최

-2005년 5월 8일, 서울 “귀향아리랑문화예술절”에 이어 “제1회 귀향절”, 연변최초 “생태가요창작발표대회” 개최, 12월, “연변민들레생태산업연구유한회사” 설립

-2006년 8월, “민들레생태연수원” 개원, “제2회 연변민들레생태문화예술절(귀향절)”개최, 중국조선족발전연구회와 조선족문인사회 최초의 “토템문화현상학술세미나” 공동개최

-2007년 8월, “제3회 연변민들레생태문화예술절” 행사 개최. 중국조선족발전연구회, 연변일보, 길림신문, 료녕신문, 연변《생활안내》의 공동주최로 생태소설, 시, 수필, 가요, 미술, 촬영작품현상공모 및 시상식, “제1회 세계연변민들레전통된장축제와 생태쌀, 생태꿀축제” 치름. 중국, 한국, 일본 등 각계 인사 1,000여명 참여, 500여명 현장 참석

기자: 왜 기업을 설립해놓고 기업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어보이는 문화행사만 벌리는가? 실속 없이 명예만 추구하는것이 아닌가?
리동춘: 경제란 인간활동의 산물인만큼 경제에 앞서 인간이 우선이다. 기업제품의 존재는 시장배육의 전제하에서만 가능하다. 문화인재가 많은 연변은 인재의 보고(寶庫)로 되기에 손색이 없다. 문화인들과의 련대로 시장을 개척할수 없겠는가? 이런 생각으로 일반 통념을 깨는 역발상에 토대한 문화적 투자에 성의를 넣은것이다.

기자: “민들레”가 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리동춘: 생태인간, 생태기업, 생태제품이다. 21세기는 생명산업의 시대이자 인류의 건강을 최우선으로 하는 시대이기 때문에 건강기능식품의 시장예비가 무진장할것으로 판단된다. 우리 민족의 명맥을 이어왔고 앞으로도 없어서는 안될 전통발효식품과 무공해 생태농산물을 기능성제품으로 업그레이드시켜 인류건강증진에 이바지하려는 것이다.

기자: 훌륭한 발상이고 계획이라 생각되지만 리상주의적 색채가 짙은것 같은데?
리동춘: 현실을 무시하면 안 된다. 그러나 지나치게 “현실”에 집착하면 다른 기업들과의 무한경쟁속에 깊이 빠지게 된다. 10년, 20년을 내다보고 거기까지 가는데 현실과의 접합점이 어디인가 그 과제를 잘 풀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 과제는 우리 삶의 밑바닥에 있다고 본다. 남들이 다 회피하지만 꼭 해야 할 과제인 농촌경제와 전통산업에서 풀어가자는 것이다. 우리민족이 조상 대대로 이어오던 우수한 전통문화, 전통산업을 살려가면서 문화와 산업 발전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동시에 노리자는 것이다.



생태산업 공동체 “전통된장련합국”

리동춘은 연변전통장류 생산공급시스템의 량성순환체제를 구축하고 그것을 세계인의 식품으로 승화시키기 위한 마케팅전략으로 "된장련합국"을 창설하련다는 괴짜구상을 내놓았다.

기자: “된장련합국”? 참으로 기발하고 거창한 착상이다. 그런데 왜 하필 된장인가?
리동춘: 된장의 물리적 기능은 더 설명하지 않아도 그것을 먹고 살아온 사람들이 더 잘 알고 있다. 단지 강조하고싶은 것은 된장문화다. 우리 민족의 문화는 된장문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된장에는 아주 깊이 있는 령성(靈性)문화가 있는데 그것을 5덕(五德)이라 한다. 즉 단심, 화심, 항심, 선심, 불심이다.

기자: 금시초문이다. 무슨 뜻인가?
리동춘: 단심(丹心)은 일편단심, 다른 음식속에 섞여도 자기의 맛을 잃지 않는다는 뜻이고 화심(和心)은 다른 음시과 잘 조화하면서 자기 맛을 낸다는 것이다. 항심(恒心)은 오래 두어도 변질하지 않고 오히려 더 좋은 기능으로 승화한다는 뜻이고 선심(善心)이란 매운맛을 부드럽게 해준다는 의미, 불심(佛心)은 기름기와 비린내를 제거해 주는 소박하고 아름다운 령적기능을 가지고있다는 의미이다. 우리 민족의 특성과 비슷하지 않은가? 인간이 갖추어야할 문화라 생각한다.

된장은 우리민족의 명맥을 이어오면서 민족과 운명을 함께 해온 가장 기본적인 기초식품이다. 전통된장은 식품이면서도 항암, 고혈압 억제, 간기능 강화, 해독, 소화 등 작용과 당뇨병, 비만증, 심장병, 뇌출혈 등 질병 예방치료기능까지 겸비하여 이미 과학적으로 약식동원(藥食同源)제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렇게 우수한 제품임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으로 아직까지 100% 콩을 원료로, 아무런 화학첨가제도 쓰지 않고 순수 전통된장을 제품화한 기업은 조사에서 발견하지 않았다고 한다. 왜냐하면 정통적(正統的) 된장제조방법은 가정집에서 메주를 빚어 발효시킨 후 장독에 담아 최소 6개월 이상 발효, 숙성시키는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전통된장의 기업에서 그 과정을 거치면 리윤을 내기는커녕 오히려 밑지기 십상이란다. 지금 있다면 배양종균을 밀가루 등 기타 곡물에 넣어 만든 개량된장이 있는데 이런 된장은 영양가와 기능면에서 정통된장과 비교가 안될만큼 큰 차이가 난다는것이다.

리동춘이 연변된장을 선택한 리유는 지극히 간단했다. 아직 세계적으로 전통된장을 생산하는 기업이 없는데 반해 우리 민족은 집집마다 생산기술을 가지고 있다는것, 말하자면 수많은 농가를 기업화시키는 최적의 여건이 오직 연변조선족자치주에만 주어져있다는 것이다.

물론 애로사항이 없는것이 아니다. 하나는 집집마다 다른 장맛을 한가지 맛으로 통일시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무공해식품으로 수출의 길을 여는것이다. 이 두가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는 장장 3년의 시간을 준비해왔으며 수많은 학비와 비용을 지불하였다.

수출을 거듭 시도해서 네번째만에 성공시킨 리동춘은 향후 매월 100톤(물론 2~3년 후엔 100톤만이 아니다)이란 수출의 길을 열어놨다.

리동춘의 "된장련합국"창설구상은 바로 이 과정에 싹이 터서 무르익은 것이다.

이 구상은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고있다. 본 지역에서 무상으로 공장, 집터와 농경지 일부를 제공하고 요구표준에 따라 만든 제품 전체를 수매하는 조건으로 80호 좌우의 농가기업을 육성하는 동시에 한국, 조선, 미국, 일본 등 우리 민족이 많이 살고있는 나라와 지역의 기업을 유치하거나 회원기업으로 받아들여 세계적 네트워크를 형성, 21세기적 생태기업리념의 산업공동체를 만들어간다. 또한 수익금의 최저 3% 이상을 “생태문화경제산업발전기금”으로 기부키로 확정, 또 민족을 사랑하는 NGO(엔지오, 국제비정부기구)단체들과도 널리 교류하면서 전통산업으로 민족의 발전을 돕는것을 목표로 내걸었다.

실제로 이 구상은 계획단계를 넘어 이미 실시에 들어갔다. 전화문의가 빗발치는 가운데 10여개 기업이 이미 동참을 선언했고 그 기업들에 줄을 다는 숱한 농가들도 앞이 보이는 희망에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는 상황이다.

만질듯이 다가온 “된장아리랑”

기자: 세간에서 연변에 대해 좋지 않은 평가도 있다. 특히 연변에서 기업을 한다는것은 호박 쓰고 돼지우리에 뛰여드는 격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연변을 선택한 다른 리유가 있다면?
리동춘: 연변사람은 밖에 나가서 취직을 할 때도 자기가 연변사람이라는 것을 말하기 두려워한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러나 똑같은 피가 흐르는 아리랑민족으로서 사람들이 나쁜것이 아니며 더욱이 누구의 탓으로 생각할수 없다. 단지 지역마다 문화적인 차이는 있다고 봐야 한다. 우리 민족은 왕은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서로가 잘 어울리는 우수한 공동체문화가 있다. 강자 앞에 머리 숙일줄 모르고 약자는 베풀어 주는, 모두가 왕이 되는 그런 문화특성이 짙은 민족이다. 특히 연변지역은 전통집거구역으로서 그 뿌리가 더 깊다고 생각한다. 외지 사람들을 잘 인정해주지 않는 연변의 인정세태를 직접체험으로 맛본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하지만 나는 연변사람들을 사랑한다. 우리가 멀지 않아 혼연일체를 이루게 될것임은 틀림 없다. 연변은 때묻지 않은 전통문화와 전통기술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곳이다. 민족전통산업과 문화산업을 발굴하고 계승발전시킬수 있는 큰 예비를 가지고있는 곳이라 생각한다. 이것이 내가 연변을 선택하게 된 원인중의 하나다.

기자: 연변발전에 대한 새로운 관점이 있다면?
리동춘: 21세기 미래지향적인 새로운 문화의 창달이 중요하다. 이런 의미에서 연변조선족자치주를 생태자치주로 건설한다는 정부의 취지가 매우 좋다고 생각한다. 단, 이것이 공무원사회에서 부르짖는 구호에만 그치지 말고 정부와 서민 사이에서 역할하는 민간단체의 육성에 무게를 실어 고향살리기, 민족살리기, 연변살리기, 자연살리기, 환경살리기에 자발적으로 나서는 “귀향아리랑”들의 힘을 최대한 활용하는 정책제정이 필요하겠다.

기자: 전통장류단지조성이 연변에 주는 의미는?
리동춘: 일을 금방 실행해나가는 시점에서 결론을 말하기는 어렵지만 꿈만큼은 뚜렷하다.

우리가 매일 접하는 전통된장의 본연의 가치를 극대화하여 민족식품의 위용을 세상에 떨쳐보자는 것, 농가기업의 신개념 기업리론을 현실화시켜 “3농문제” 해결에 참고가 될만한 경험을 더듬어 내고 아이디어경제(策劃經濟)의 모델을 만들어 농민들에게 적은 돈이나 지어 빈손으로도, 그리고 같은 제품의 생산자들과 사활적인 경쟁을 벌리지 않고 오히려 단합하면서 함께 창업할수 있다는 신념을 심어주자는 것, 연변민들레생태문화 예술절을 특색짙은 생태문화브랜드로 키움과 아울러 국내(한족지역 망라)와 국외에 널리 된장문화를 홍보하며 이로써 연변을 명실공히 “세계속의 최대전통장류집산지”로 부상시키 자는것이다.

금년 제4기 이벤트는 씨름, 그네, 널뛰기 등 전통체육항목을 포괄한 대회로 치를 계획도 짜놓았고 생태가요응모는 이미 시작했다.

리동춘은 이렇게 말한다. 총명한 사람들이 한결같이 앞만 보고 나갈 때 좀 바보스럽게 되돌아가는 것도 기회로 될수 있다. 지금 세계 500강 기업시대는 지나가고 500대 기업시대가 시작되였다. 500강은 경제실력으로만 평가하는데 반해 500대는 환경개선 등 시회기여도를 종합평가한다. 멀리 내다보는 안목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요컨대 “민들레”의 경영리념은 “엔지오정신”에 립각한 리타적 경영이다.

취재수첩을 접으며

오십대 사나이의 가슴속에서 굽이쳐흐르는 “귀향아리랑”노래, 아리랑 고개넘어 연변의 심산벽곡에서 “된장아리랑” 새노래 창작에 여념이 없는 리동춘! 그의 웅숭깊은 눈길에서 우리는 세계최대된장집산지로 떠오르는 연변을 본다.

박문희 pwx0907@yahoo.com.cn
길림신문 2008-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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