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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國朝鮮族이 民族意識을 보존할 수 있는 원인 및 現存問題(1)
백두산    조회 1,989    2008.07.27백두산님의 다른 글      
유 병 호 (연변대학 민족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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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遷入民族으로서 중국조선족이 他民族의 망망한 포위속에서도 同化되지 않고 母體民族의 고유한 민족습성들을 보존한데는 아래와 같은 원인이 있다.

  첫째, 중국조선족은 일찍 백여년전부터 동북지방으로 이주하기 시작하였고 북간도(현재의 연변지방)와 동변도(서간도지방 즉 압록강북안지방)의 개척자로서, 1910년대에 연변과 같은 민족집거구 및 사회를 형성하였다.

  둘째, 조선족은 일찍 천입초기부터 淸政府의 민족동화정책과 기시를 반대하여 투쟁하였고 그후에는 군벌정부 및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에 항거하여 '自治'권을 쟁취하기 위한 不搖不屈의 투쟁을 진행하였다.

  셋째, 중국조선족의 移住는 1860년대로부터 시작하여 1945년 즉 광복될때까지 줄곧 지속됨으로서 母國과의 경제, 문화 및 인구유동이 중단되지 않았다. 80년대 말까지는 北韓과, 그 이후에는 한국과 광범한 교류를 계속함으로서 母體민족으로부터 부단히 새로운 민족성분을 흡수하여 漢化되여가는 脆弱점을 彌縫하였다.
역사상적으로 元, 明, 淸初에 동북지방으로 이주한 고려인(혹은 조선인)은 장기간 국경이 봉쇄되고 또 인신자유가 없는 원인으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점차 타민족과의 雜居, 聯姻속에서 동화되고 말았다. 이에 반하여 청말에 이주하기 시작한 조선족들은 1945년 광복될때까  지 줄곧 한반도와 밀접한 연계와 래왕을 유지하였다. 조선족이 집거한 연변지방은 자고로 함북경제권에 속하였는데 일제가 연변의 시장을 독점한후 이러한 추세는 더욱 강화되였다. 한국과 동북이 모두 일제에 강점당하여 식민지로 윤락된후 한반도와 동북은 사실상 국경이 없는 '자유'지구로 되어, 두만강과 압록강 兩岸사이에는 빈번한 민간래왕과 교류가 진행되엿다. 특히 일제가 동북을 대륙침략의 병참기지로 만든 후 조선인이민정책을 실시하여 매년 수만명의 조선인이민들이 강박에 못이겨 동북으로 이주하였다.22)

1945년 光復전야에 중국의 조선족인구는 2.160.000명으로 증가하였다.24) 이러한 인구유동은 객관상에서 중국조선족이 본민족의 문화유산을 계승하고 발전시키는데 유리한 조건을 제공하였다.

  광복이후 중국조선족은 의연히 조선과 활발한 민간적 교류와 래왕을 진행하였다. 문화, 교육, 출판 등 분야의 교류는 중국조선족이 모체민족과의 동질성을 확보하고 민족의식을 보존하는데 중요한 작용을 하였다. 특히 1992년의 한중수교이후 광범한 분야에서의 교류는 중국조선족사회에 전례없는 생기를 불어 넣어 주어, 어느정도 소실되기 시작한 민족의식과 민족공동체가 다시 청춘의 활기를 띠게 하였다.



  넷째, 중국조선족은 일찍 1931년의 '만주사변'전후부터 중국공산당을 따라, 중국의 해방과 자신의 해방을 위하여 헌신적으로 싸워 불후의 공적을 이룩하였다. 중화인민공화국이 창건된후 조선족인민은 정치, 경제, 문화, 교육, 의료 등 면에서 기타 민족과 평등한 권리를 향수하게 되었으며 연변조선족자치주, 장백자치현을 비롯한 民族自治行政機關을 설립하게 되었다. 중국공산당의 민족평등정책은 조선족이 自我民族意識을 본존하고 발전시킨 가장 주요한 원인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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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의 중후기에 이르어 중국정부가 개혁, 개방정책을 추진하면서부터 중국조선족사회는 전례없는 진통과 위기를 맞게 되었다.

  첫째로, 市場經濟의 도입과 商品意識의 재인식으로 20여만명이 만리장성을 넘어 關內지구로 이동함으로써 조선족집거구의 인구비례에 反常的인 현상이 나타났다.

  둘째로, 상품경제의 발전으로 농촌의 인구가 점점 도시에 지중되고, 잇따른 出國熱로 농촌총각이 결혼하기 힘든 현상이 날로 엄중하여져 조선족인구가 감소되는 현상까지 나타나게 되었다.

  셋째로, 교육경비의 감소 및 학생내원의 감소로 기초교육을 포함한 민족교육기관이 줄어 들고, 사람들의 민족의식의 수준이 낮아지고 있다.

  중국조선족사회의 위기는 민족유지들을 當惑하게 하고 그들로 하여금 문제의 해결을 위하여 苦心奮鬪하게 하고 있다. 오직 우리가 현실을 正視하고 역사속의 중국조선족의 민족의식의 형성, 발전과정을 재검토하고 문제의 해결책을 찾아야만 21세기에 중국조선족의 새로운 跳躍을 실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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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개혁, 개방정책 이후 조선족사회에는 경제, 문화의 발전과 더불어, 민족의식의 위기가 동반하여 세인의 주목을 받고 있다.

  첫째, 《헌법》은 '중국경내의 모든 민족은 일률로 평등하다'고 규정하였지만 객관적인 조건으로 사실상 불평등하다. 이러한 불평등은 인구비례, 생활범위, 문화의 발전수준에 의하여 불가피면적이다.

  사실상의 불평등은 아래와 같은 몇가지 점에서 표현된다.

  1, 정치상에서 모든 민족은 평등한 참정, 의정권을 갖고 있으며 인민대표회의, 정치협상회의에는 소수민족대표의 비률이 규정되여 있지만, 국가의 실질(實質)권력기관인 각급 중공위원회에는 민족비례가 없다. 그러므로 연변을 포함한 소수민족집거구의 실질적인 권력자는 한족(漢族)인 경우가 많다. 이외에 역사적으로 형성된 민족배타주의가 의연히 존재하면 이것이 정치생활에 반영된다.

  2, 경제상에서 《민족자치법》에 민족자치정부는 자치구역내의 자연자원을 포함한 경제지배권이 있다고 규정하였지만 사실상에는 집행되지 못하고 있다. 연변의 경우를 예로 들면 지주(支柱)산업으로 되는 8대 임업(林業)국이 중앙정부에 귀속되여 지금까지 현안(懸案)으로 쟁의(爭議)되고 있다.

  3, 문화, 교육방면에서 비록 조선족은 자민족의 언어, 문자를 사용할 권한이 있다고 하지만 실지로는 한(漢)화의 현상이 엄중하다. 유일한 민족대학인 연변대학의 경우, 조선말로 교학하는 학부는 조선어학부뿐이고, 조선문으로된 학술연구지는 조선어를 제외하고 한부도 없다.

  사실상의 민족불평등은 조선족의 민족의식의 퇴화(退化)를 가속화하였다. 중소학교의 교육에서 조선족학생이 한족(漢族)학생에 비하여 부담이 과중한31)원인과 인위적인 원인으로 민족의식의 계발에서 제일 중요한 민족역사교육이 무시당하고 있다. 연변대학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조선족학생이 단군(檀君)을 모르는 학생이 90%를 점할 정도이다.32) 개인의 출세욕때문에 스스로 본민족의 언어, 문자를 포기하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는데 특히 정계나 공직자 가운데서 엄중하다. 이러한 사람들은 본민족에 대한 이해의 부족으로 하여 생긴 '민족자비감'으로 심지어 한족(漢族)으로 자처하기도 한다. 이런 경향은 관내를 비롯하여 조선족산재구에서 날로 확산되고 있다.

  둘째, 개혁, 개방정책이후 조선족사회에서 문제로 되고 있는 인구유동이 민족의식의 퇴화를 촉진하고 있다.

  개혁, 개방은 조선족사회의 신속한 발전에 새로운 활력소를 불어 넣어, 조선족이 폐쇄와 빈곤에서 벗어나 새로운 비약에로 도전하는 계기를 마련하여 주었다. 하지만 전통적인 산업과 수전농사에만 만족하던 조선족들은 상품의식과 금전만능주의로 분분히 상계(商界)와 산업취직의 행렬에 뛰여 들었다. 불완정한 통계에 의하면 80년대 중기이후, 동북3성의 조선족가운데서 20여 만명이 관내로 이주하여, 상업을 경영하거나 혹은 한국기업에 취직하였다. 조선족인구의 1/10이란 방대한 인구유동으로, 기존의 민족공동체가 뒤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물론 이들 이주자들과 자녀들마저 객관적 조건의 제한과 생존 때문에 부득불 한화(漢化)하는 현실에 직면하였다.

조선족의 인구유동은 아래와 같은 3개 방면으로 진행되고 있다.

  1, 타지역의 도시에로의 이동: 80년대 중기에 연변을 비롯한 조선족집거구(농촌)에서 동북내의 심양, 장춘, 할빈, 길림, 대련 등 도시로 이동하던 것이, 80년대 말기로부터는 산해관을 넘어 북경을 비롯하여 산동, 강소, 광동 등 연해도시로 대거 이동하였다.

  1982년에 동북을 제외한 각 성에서 조선족인구가 만명을 넘는 곳은 내몽고뿐이고, 천명을 넘는 곳은 북경과 하북성이고, 5백명을 넘는 성(省)은 5개이고, 100-500명인 성(省)은 12개이고, 백명 이하되는 성(省)은 4개다. 그러나 19990년의 통계에 의하면 내몽고의 조선족인구는 이미 2만명을 넘었고 천명을 넘는 곳은 북경, 하북성 등 9개 곳이고, 5백명을 넘는 곳은 신강 등 7개이다.33) 또 대련의 경우, 1990년에 불과 5천명이던 조선족이 1997년에는 1만5천명으로 급증하였다.34)

  흑룡강성을 예로 들면 조선족 농촌의 20-30%의 노동력이 토지를 떠나 도시로 진출하였다. 조선족이 가장 많이 집중된 용정시의 경우, 1990년의 인구실적은 1982에 비하여 용정시와 개산둔진 이외의 전 시(市)의 17개 향, 진의 조선족인구는 모두 감소되었으며, 감소율은 2.14-47.35%로 평균 21.30%에 달하며, 절대 감소인구는 18.617명에 달하였다.35)

  2, 부근 도시에로의 이동: 경제적인 효익이 낮은 농촌을 떠나, 부근의 성시로 이주하여 음식점과 같은 소규모의 상업활동에 종사하거나 막벌이를 하는 인구가 점점 늘어 나고 있다. 적지않은 시골마을이 완전히 폐쇄된 것과 연길시의 인구가 7-8년사이에 25만 명으로부터 35만 명으로 급증한 것이 이를 증명한다. 아직 여기에 대한  정확한 통계수자는 없다.

3, 해외로의 이동: 앞 두가지 상황에 비하여 해외이동은 가족적인 것보다는 단신(單身)적인 것이 특점이다. 80년대 중후기부터 중국정부가 주변의 국가와 상호 개방함에 따라, 조선족사회에서는 '출국열'이 일어났다. 처음에는 러시아로, 후에는 한국과 일본으로 그 열이 확산되였다. 1991-1994년의 통계에 의하면 연변에서 러시아에 간적이 있는 사람이 3만 人次에 달하였다.36) 한중수교이후 한국은 조선족의 해외인구유동의 주요한 목표로 되었다. 1996년 5월까지 한국에 다녀온 조선족은 적어도 20만 人次에 달하고, 한국에서 막벌이를 한 사람도 10만명을 초과한다.37) 현재 흑룡강성의 조선족가운데서 출국한 사람이 수만명에 달하는데 그중 반수가 한국에 갔다. 목단강시를 예로 들면 1996년말까지 각종 도경을 통하여 출국한 사람은 3만여명에 달하는데 그해에 출국한 사람이 11.600여 명에 달한다. 1997년초까지 연변정부에서 한국을 비롯한 외국에 파견한 노무자는 3만1천명인데 그중 80%이상이 조선족이다.38) 중국주재 한국영사관의 통계에 의하면 1993년에 결혼의 형식으로 한국에 간 조선족여성은 1993년에 1.463명이고 1994년에는 1.995명이였는데 1995년에는 7.693명으로 급증하였다. 1996년에는 만명을 넘었다. 이 몇년사이에 결혼을 목적으로 한국에 간 조선족여성은 2만명을 초과한다. 다시말하여 결혼적령기의 조선족여성의 1/10이 한국으로 간 것이다. 거기에 20-30대 농촌여성이 대부분 취직을 목적으로 도시에 진출함으로서 농촌총각이 결혼하기 힘든 사정은 문제는 심각하다.

  조선족사회의 제2차 인구유동(중국으로의 이주를 제1차 이동이라고 한다면)이라고 할 지경으로 민족사회에 심각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이번의 인구유동은 현재는 물론 앞으로 중국조선족사회의 발전과 운명을 결정하는 중대한 문제이다. 조선족인구의 감소, 민족집거구역의 인구류실, 민족교육의 퇴화가 잇따를 것이며 가장 중요한 문제는 이동인구의 민족의식이 소실되여 가는 것이다.              

  셋째, 시장경제가 도입된 후 조선족사회에는 개인주의와 명리(名利)주의가 범란하여 민족공동체를 위협하고 민족자아의식이 해이(解弛)하여 졌다.

  한 민족의 우수성은 그 민족의 경제력에서도 표현되지만 민족의 문화수준, 단합심, 인구 등에서 복합적으로 나타난다. 역사상 중국조선족이 중국에서 가장 우수한 소수민족중의 하나로 인정받은 것은 장강이북에서 유일하게 벼농사를 하는 민족, 1958년에 상해시와 함께 중국에서 제일 처음 7년제의 의무교육을 완성한 민족, 체육(축구는 대표적이라고 할수있음)을 잘하고 단결심이 강한 민족, 동북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민족이라는 의미지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80년대 이후 이러한 민족우수성은 점차 사라지고 타민족으로부터 허영심이 강하고 분열된 민족이라는 전에 없었던 듣기 거북한 평판들을 듣게 되였다.

  1, 중국정부의 산아제한정책은 소수민족은 아이 둘을 낳을 수 있다고 규정하였지만 현재 90%이상의 조선족가정에는 아이 한명밖에 키우지 않는다. 이전에는 이 점이 문명한 행위로 해석되였지만 내심에는 젊은 부부들이 자신들의 부담을 줄이려고 自私自利하다는 평판을 듣게 된다. 게다가 근래에는 농촌총각들이 결혼하기 힘들어, 조선족인구의 증가율은 전국에서 제일 낮을 뿐만아니라 일부 지역에는 감소하는 현상까지 나타났다. 농촌에서 이런 상황은 더욱 엄중하다.

  흑룡강성 녕안시 명성조선족촌에는 300여호의 조선족이 있는데 1981년의 출생인수는 42명이였는데 1996년에는 3명밖에 안된다.
  이러한 상황은 농촌총각이 결혼하기 힘든 상황으로 인하여 더욱 악화될 것이다. 지금 조선족농촌의 미혼남녀의 비례는 일반적으로 20:1인데 엄중한 곳은 심지어 40-50:1이다. 용정시에 조선족이 집거한 향(鄕)의 미혼남여의 평균비례는 22:1인데 좀 편벽한 백금향은 57:1이다.40)

  이런 상황이 앞으로 계속될 경우, 조선족사회 특히 농촌인구의 감소에 잇따른 인구의 노령화현상이 나타나 사회에 심각한 양로보험부담을 가져올 것이고 결국에는 타 민족에 비하여 인구의 열세로 민족공동체의 축소 혹은 해체에로 발전할 것이다.

  2, 조선족의 공명(公明)주의는 자녀에 대한 학교교육에서 잘 표현된다.

  중국조선족은 교육수준이 높은 것으로 전국에서 유명하다. 앞에서 서술한 것처럼 조선족은 1958년 상해시와 함께 7년제(소학교 5년, 초중 2년)를 보급하였다. 1990년의 통계에 의하면 조선족가운데서 소학교이상의 교육을 받은 사람은 82.75%로, 전국의 평균수 보다 10% 높으며 소수민족의 평균수 보다 20% 높다. 전국의 평균 교육수준이 6.25년 이고 소수민족은 5.29년인데 비하여 조선족은 8.52년이다.41) 조선족의 매(每) 만명중 대학생, 고등학생, 문화인수의 비례는 한족(漢族)을 포함한 각 민족중에서 가장 높고 문맹의 비례는 가장 낮다. 특기하여야 할 것은 이 모든 것이 민족교육에 의한 결과라는 점이다.

  하지만 교육수준의 제고와 함께 조선족학생들이 대학교교육을 받을 수 있는 범위가 한정되여 있으므로 자녀를 한족(漢族)학교에 보내는 경향이 날로 늘어가고 있다. 연변의 경우, 1989년에 조선족중학교 19개 소, 국민학교 188개 소가 있었지만 1995년에는 중학교 6개 소, 소학교 77개 소로 줄어, 68.42%의 감소율을 보여 주었다. 흑룡강성에서도 마찬가지로 1990년부터 1997년사이에 소학교는 382개 소로부터 256개 소로(감소율 33%), 중학교는 77개 소로부터 43개 소로(감소율 44%) 각각 감소하였다.42)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게 된데는 조선족인구의 대량적인 유출(流出)과도 관계되겠지만 부모들이 자녀가 장래에 명문대학에 입학할 것을 기대하여 한족학교에 입학시켰기 때문이다. 연길시에서는 조선족이 한족학교에 입학하지 못한다는 규정아닌 규정을 제정할 정도로 문제가 심각하다.

  교육은 민족의 소질과 장래에 관계되는 관건적인 문제이다. 조선족의 민족교육의 위기는 차 세대의 조선족의 운명에 관계되는 중대한 문제로서 시급히 해결하지 않으면 않된다.

  3, 타 민족, 특히 한족과의 내왕에서 민족적 자부감이 점차 사라지고 민족자비감이 늘어 간다. 민족역사교육이 실시되지 못하고 민족의식에 대한 강조가 진행되지 못한 원인으로, 자라나는 세대가운데서 심지어 정부의 관원들 중 민족언어의 사용을 꺼려하고 한문(漢文)수준을 유일한 눙력의 척도(尺度)로 보는 경향이 날로 심해진다. 정부기관에서 인원을 임용(任用)할 때, 한어의 口寫능력을 표준으로 삼아 사실상 이를 조장하고 있다.

  언어, 문자는 복장과 더불어 한 민족의 상징이기도 하면서 또 가장 쉽게 타 민족에게 동화되는 부분이기도 하다.언어, 문자의 동화는 민족동화의 첫 시작이다라고 말하여도 관언이 아니다.  

  넷째, 민족이론이 정리되지 못하고 보급(普及)되지 못한 원인으로 조선족군중들 가운데서 민족관, 조국관, 모국관이 혼돈되고 있다.

  10년 동란43)시기 '좌'적인 사상의 영향으로 민족이론을 비롯하여 민족역사, 언어문자 등 등에 대한 연구와 보급(普及)이 중단되을 뿐만아니라 스스로 漢化되는 풍조가 성행하였다. 그후 비록 민족연구기관들이 회복, 신설되였지만 아직까지도 그 후이증을 느낄수 있다. 일부 사람들은 조선족과 모체민족간의 공동성만 지나치게 강조하고 중국조선족의 특수성을 전혀 무사하는 이른바 '민족동일논'이 있는가 하며, 또 일부 사람들중에서는 반대로 조선족의 특수성만 강조하고 공동성을 무시하는 이른바 '민족독립논'도 있다. 전자는 대개 노령(老齡)층과 문화정도가 낮은 사람들중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근래에 한국과의 내왕이 빈번해지면서 발달한 한국의 경제생활에 매혹된 사람들의 가운데서 이러한 논조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 가고 있다. 반대로 후자는 젊은층과 대학생을 포함한 학생들 속에서 상당한 비중을 점하고 있다. '모국방문사기'를 당한 사람들중에는 착오적으로 개인에 대한 감정을 한국에 대한 불신임, '증오'로까지 확산하는데 이 대열에 가담하는 사람들도 늘어 가고 있다.

  중국조선족은 모국에서 이미 근대적 의미의 민족으로 형성된후 중국으로 이주한 跨境민족이다. 장기간 중국에서의 생산활동을 하는 가운데서 중국조선족은 모체민족의 언어, 문자, 생활풍습을 보존한 동시에 점차 생활의 곳곳에서 타민족의 우월한 습성을 받아들이고 문화를 수용하여 한반도내의 모체민족과는 '다른' 새로운 생활문화를 창조하여 특색을 이루고 있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이러한 특색은 더 짙어질것이고 이는 또한 역사발전의 필연적 추세일 것이다.

  중국조선족의 이러한 특수성은 조선족의 二重性을 결정하였다. 일찍 조선족의 우수한 아들딸들은 중국공산당의 령도하에 혁명투쟁에 투신(投身)하였는 바 그들은 조선의 독립과 중국의 해방을 위하여 싸웠으며 조선과 중국을 부모와 같은 존재로 보았다.44) 이러한 관점은 오늘에도 의연히 정확하다. 하지만 주의하여야 할 점은 부모라고 하여도 결국에는 아버지, 어머니의 구별이 있다.

  조선족역사연구를 통하여 정확한 민족관을 수립하고 대중속에 주입시키는 것이, 현존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4

  중국조선족은 반만년의 역사와 백여년의 경력을 가지고 있는 현대적 의미의 민족이다. 조선족의 특수한 역사는 조선족의 二重性 즉 모체민족과의 공동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체의 특점을 가지고 있는 점을 결정하였다. 조선족의 민족의식도 이러한 문제를 전제로 하여 파악하여야한다.

  현실의 조선족사회의 위기는 산업화하는 과정에서 피치못할 진통이다. 현실을 정시하고 문제의 해결점을 찾는다면 진통후의 조선족은 더욱 신선하고 건강한 모습으로 12억의 중국인들속에 우뚝 서게 될 것이다. 여기에는 우리 자신의 피타는 노력이 필요할 뿐만아니라 한국을 비롯한 국제동포사회의 지지와 성원이 필요하다. 21세기에는 필연코 한반도를 중심으로 동북아지역에 한민족공동체가 건립되여 민족의 새로운 기원을 시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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