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이 자자하고 또 가이드가 진시황의 백만 대군 운운해 매우 거대한 병마용 대군인 줄 알았다. 적어도 만 명의 병사 정도는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직접 보니 듣던 소문과는 달리 병마용은 몇 개 없었다. 앞 스무 줄 정도라고 할까. 중간쯤에는 깨진 게 많고 뒤쪽은 아예 발굴하지 않았다는… 사진 찍으면 이처럼 아주 많은 병사가 있는 효과가 있다.
새해 첫날 서안에 놀러갔는데 기분 좋은 려행이 됐다. 날씨도 무척 쾌청했고… 춥다고 해서 연변 정도인 줄 알았는데 체감 온도는 상해보다 더 따뜻했다. 실제 기온은 상해보다 2~3도 정도 낮았다. 공항을 벗어나 서안 시내에 들어서니 안개가 끼어 있어 ‘이곳도 스모그인가’를 물어보니 상해는 PM2.5 오염이지만, ‘섬북은 황토 고원 특유의 현상’이다고 얘기한다. 그런데 실상 서안이 시교보다 더 심한 것 같다.
3호갱 외관으로 겉보기는 으리으리하지만, 3호갱은 거의 완전히 발굴하지 않았다. 2호갱도 고작 몇 개 남짓. 3호갱은 건너뛰어도 될 듯싶다.
2호갱은 달랑 몇 개. 물론 외관은 아주 웅장하다.
진시황 병마용에서 발굴된 마차를 보관한 박물관. 그런데 외관의 규모와 달리 내부에는 마차가 달랑 두 대만 보관돼 있다.
동마차.
동마차.
가이드는 ‘진시황 병마용은 보러오지 않으면 후회하고 보면 더욱 후회하는 곳’이라고 했다. 입장료는 아주 비싸다. 120원. 년간 수입이 30억이라고 한다. 누구나 다 클린턴처럼 갱에 들어가 병마용을 직접 만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멀리서 본다면 수량이라도 많아야겠는데 그렇지도 않다.
당나라 황실전용 온천 화청지. 양귀비 때문에 유명하다. 손을 씻어보니 여느 온천과는 달리 물이 매끄러운 느낌을 주었다. 건조한 겨울철에도 이 온천을 사용하면 핸드크림을 사용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과연 그랬다.
양귀비 전용.
왼쪽에 정자는 양귀비 머리를 말리기 위해서 당 현종이 전문 지어주었다는 정자.
화장실로 ‘어정헌’(御淨軒)이라는 멋스러운 이름을 갖고 있었다.
양귀비와 당 현종이 심었다는 석류나무. 둘 사이에 자식이 없어서 다음 생에라도 자식 많이 낳자고 석류나무를 심었다고 전해진다. 지금도 열매가 열린다고 한다.
화청지 내부에 서안사변 기념관이 있는데 장개석이 화청지에 머무는 도중에 서안사변이 일어났다. 장개석이 머물던 정원이 참 아름다웠는데 모두 그곳에 묵고 싶다고 한바탕 야단법석이었다. 벽에는 당시 총알 자국이 남아있었고 총알 자국은 아주 크고 뚜렷했다. 가이드는 사람들이 관람하면서 너무 만지는 탓에 자꾸만 커진다고 한다.
호텔 부근에 비림(碑林)박물관 있어서 들러봤다. 서예 취미가 있는 사람들이 둘러보기에 적합한 곳이었다. 옛날 명필들이 남긴 비문이 있는가 하면 묘지문도 많았다. 헌데 비수기라 관광객이 적어서 몸이 으스스했다.
당 예종이 직접 글을 썼다는 종. 원래는 서안의 종루에 있었는데 보호하는 차원에서 비림박물관으로 옮기고 종루에는 모조품을 설치했다.
설명을 자세히 읽지 않아서 잘 기억나지 않지만, 이것은 그나마 묘지문이 아니고 옛날 장원급제하는 사람들 위해서 이렇고 저렇고 했다는 비석.
옛날 돌관도 진렬했었고 리원 황제릉을 지키던 집채 같은 돌사자, 돌소도 가져와 진렬했던데 참으로 이해할 수 없었다. 이렇게 큰 비석을 누가 도둑질을 생각할지 의문이다. 그것도 하필이면 릉묘 지키던 것들을 가져와 으스스한 분위기 만들어 놓은 것인지….
비석과 돌관은 기분이 좀 그래서 괜히 들렸다는 후회가 앞서면서도 입장료 50원을 랑비하는 것도 그래서 다 구경하다가 밖에 그림 전시한 것을 발견하고 햇볕을 쬐면서 사진을 촬영해 봤다.